국내여행/경주시 산책길

경주 오릉으로 나선 아침산책

강산해 2012. 8. 25. 14:04

 

◎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아침

 

    늦더위가 완전히 가시지도 않았고 하늘도 조금 찌푸리고 있지만

    여느 토요일 아침과 다를바 없이 오늘도 산책을 나간다.

 

오늘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와 또 다른 박씨 성을 가진 왕 3명 그리고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부인을 모셔논 

경주오릉으로 차를 몰고 달려간다.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편안하게 마을 공터에 주차를 하고 나니 숭덕전이 눈에 들어와

숭덕전으로 먼저 들어 서기로 한다.

 

 

문이 잠겨있는 듯 해서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큰 한옥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관리인인지 문중식구인지 몰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보지만 박혁거세의 제를 모시는 장소인 숭덕전 내부로는 개방이 되지 않은 듯 하여

오릉을 빠져 나오며 뒷편으로 가 보기로 한다.

 

 

오릉에서 돌아나와 우측의 오릉 정문(신라문)으로 나가기 전 앞으로 열린 숭덕전을 향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숭덕전(崇德殿)

문화재 자료 254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오릉(五陵)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 세종 11년(1429)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었고 숙종 20년(1694)에 수리하였다.

 

지금 경내에는 조선 영조 35년(1759)에 세운 박혁거세와 숭덕전의 내력을 적은 신도비가 있으며,

이곳은 경종 3년(1723)에 이르러 숭덕전이라 불렸으며 제사를 모시는 참봉 3인을 두게 되었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와서 박씨 문중에서 주관하여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다.

 

- 문화유산 홈페이지에서 발췌 -

 

 

숭덕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숭문이지만, 이 곳 역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정리가 복잡해 진다.

 

그러니까 위의 영순문은 오릉을 둘러 본 후에 나오는 길에서 만난 것이고

지금부터는 그 앞의 장면에서 이어지는 길이다.

 

우측으로 길을 이어니 작은 연못 하나가 나타나고

바로 그 앞으로 알영정(閼永井)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알영정은 신라시조왕비인 알영부인이 태어난 곳이다.

기원전 69년에 한 노구(老嫗) 가 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갔을때 우물가에 용이 있어 놀랐는데,

그 용 옆구리에서 귀녀가 태어나서 수양(修養)하였는데 용모가 단미하고 총명 지혜하여 시조왕비가 되었다 전해진다.

 

결국 박혁거세 뿐 아니라 알영부인까지 시조왕과 시조왕비로서 전설을 타고 태어난것이다.

 

알영부인은 신라 시조왕 61년 재위기간 동안 내보가 지대하여 이성(二聖)으로 존경 받았다 한다.

 

 

 

그렇게 숭덕전과 알영정을 빠져나와 뒷뜰로 이어지는 오릉을 향한다.

 

오릉 둘레와 주변은 산책길로 잘 가꾸어 져 있지만 주변의 숲들로 원시림 즐길 수 있다.

산책길을 걸으며 좌우로 눈만 돌리면 원시림과 멋진 소나무 숲이 시야를 가득 채워

깊은 산골의 산사에라도 들어 온 느낌이다.

 

 

 

 

오릉의 뒷편인 진행길 우측으로 봉분들이 비교적 나즈막하게 자세를 낮추었다.

 

 

 

 

오릉으로 가는 관문인 듯한 숭의문을 들어선다.

 

그 곳으로 들어서니 또 하나의 건물이 정면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왕이나 높은 관료들이 사용할 법한 큰 의자로 보이는 것들이 너댓개가 있다.

 

거기에 앉아 오릉을 바라보며 혁거세왕 등을 추모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바로 그 건물 뒤로 돌아나가 바라본 오릉의 모습이다.

그 건물안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일 것이다.

 

가운데로 제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석등 하나와 작은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석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신라시조왕 박혁거세를 추모하는 듯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경주오릉(慶州五陵)

사적 제 172호

 

경주오릉은 신라시대 고분군으로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경주 남산의 서북쪽 평지에 다섯 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며,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고, 2호 무덤은 표주박 형태인 것으로 보아 2인용 무덤임을 짐작케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죽자 그를 사릉(蛇陵)에 장사지냈는데 사릉은 담엄사 북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국유사' 기이편에 보면 박혁거세가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죽어 하늘로 올라간 지 7일 만에

그의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고 곧이어 알영왕후도 승하 하였다.

 

이때 나라사람들이 그들을 합장하려 했으나 뱀이 나타나 못하게 막아 흩어진 혁거세의 5체를 장사 지내고 오릉이라 하였으나 곧 사릉이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능은 담엄사 북쪽에 있다”라고 적고 있어 오릉이 박혁거세의 무덤임을 알게 된 것이다.

 

- 문화유산 홈페이지에서 발췌 -

 

 

 

멋진 소나무들로 주변을 장식한 오릉의 모습은 평안함을 자아낸다.

 

 

 

그렇게 오릉 주변을 한동안 둘러 보았지만

저 까치는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오릉 가장자리로 난 길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솔숲길로 이어진다.

 

 

고요한 이곳에서 첨 인기척을 느끼고 주위를 살펴보니

부부와 아들 3명의 가족이 산책을 나온 듯 하다.

 

산책길을 걷는 연인이나 가족을 보면 아름다운 그림속의 장면이 떠 오르는 건 왜일까?

 

 

오릉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만나는 연못이다.

 어제까지의 비로 제법 수량이 많고 녹조도 부분적으로 해소가 된듯 하다.

 

 

 

 

 

가끔의 날짐승이 짖어대는 소리 뿐 조용한 길을 거닐어 나오니 거대한 오릉기념비가 나타나고

우측 오릉의 대문격인 신라문을 향하기전 직진으로 숭덕전으로 들어서는 길이 이쁘게 이어져 있다.

 

 

   

 

 그 길로 들어서 들어올때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다시 돌아 나와

신라문을 향한다.

 

 

 

고작 1시간 정도 그 곳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날씨는 다시 더워지고

서서히 햇볕까지 나기 시작한다.

 

해서 더위를 피해 서둘러 차에 올라타고 집을 향한다.

 

※ 신라오릉이라 부르는 이도 있으나 지금은 경주오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