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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월성과 석빙고 주변의 소소한 아침풍경
    국내여행/경주시 산책길 2012. 9. 2. 07:30

    2012년 9월 1일 토요일 아침

     

       오늘 아침산책길은 반월성이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그 곳으로 애마를 몰고 간다.

     

       월성의 별궁인 동궁(안압지)의 마굿간에 애마를 묶어 두고 길을 건너서

       임금이 사는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 부르기도 했던 그 곳 월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길을 건너 월성으로 향하는 길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연못이다.

    뒤에 설명이 되겠지만 적이 성으로 쉽게 침입하지 못하게 한 방어막인 해자(垓字)의 일부분인 듯 하다.

     

     

     

    월성으로 오르는 길은 짧고 부드러운 오름길이다.

    아침운동을 나온 주민들이 가끔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산책길이 잘 정비된 듯 하다.

     

     

     

    그 진입로를 잠시만에 앞으로 광활한 초지와 숲이 펼쳐지고

    가슴까지 시원하게 열리는 풍경이 열린다.

     

    저 풍경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로 선택 받았던 것이다.

     

     

    경주 월성(慶州 月城)

     

    사적 제 16호로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을 닮았다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月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했는데,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러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신월성과 반월성, 어찌보면 같은 맥락으로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이 어렸을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4대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후 파사와 22년(101년)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한다.

     

    이 월성의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시설이 되었고,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넓은 도랑인 해자(垓字)를 팠다.

     

    남문, 북문, 인화문 등과 지금의 안압지인 임해전(臨海殿)으로 통하던 임해문이 있었으며,

    그 밖에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의 얼음창고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월성전경도에서 주변 유적지들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는데

     

    1. 석빙고  2. 동궁과 월지(안압지)  3. 첨성대  4. 계림 등

    모두가 도보로 찾아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반월성에 올라서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으나

    그 역사를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ㅎㅎ

     

    그렇게 반월성에 대해 역사를 더듬어 보고 우측으로 길을 이어 석빙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나무숲 아래로 소박한 쉼터도 요소마다 자리를 하고 있어

    햇볕을 피하기에는 무리가 없겠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만나게 되는 석빙고의 모습이다.

     

    경주에 적을 둔지가 어언 15년이 지났음에도

    초딩수학여행때 이후 첨 자세히 살펴보는 월성과 석빙고다.

     

     

     

     

    보물 제 66호로 지정된 경주 석빙고(石氷庫)

     

    조선 영조(英祖) 14년(1738년) 월성 안에 만든 얼음창고임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일이다.

    빙과류의 이름과 광고에서만도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ㅎㅎ

     

    이 석빙고는 월성안의 북쪽 성루 위에 길게 자리하고 있다.

     

    길이19m에 넓이 6m  그리고 높이가 5.45m로 제법 큰 얼음창고로

    석실은 약 천개의 돌로 직사각형의 형태로 만들어 졌으며

    천장은 외부는 봉토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천장에는 공기구멍이 셋이 있고 바닥은 비스듬하게 하여 홈을 파서 물이 잘 빠지게 마들어 졌으며,

    출입구는 남쪽으로 계단을 통해 출입하게 되어 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새겨진 글"숭정기원후재신유추팔월이기개축(崇貞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로

    영조 17년(1741년)에 옮겨 세웠음을  알수 있다.

     

    옆에 있는 석비에는 "경주 부윤 조명겸이 얼음창고를 돌로 만들었다가 3년만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석빙고의 서쪽으로 약 100m 되는 곳에 옛터가 있다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표시되지 않은 듯 하다.

     

     

      

    과연 이렇게 깊지도 않은 창고에 얼음이 녹지 않고 보관이 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기도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는데 신기하게도 아직 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렇게 석빙고도 들여다 보고

    주변의 소소한 풍경들을 즐기기 위해 월성의 가장자리로 이동 해 본다.

     

     

     

    가을 아침의 하늘도 느끼고...

     

     

     

    솔숲 속의 정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낮잠을...

     아니, 아침잠이라 해야 할까? ㅎㅎ

     

    우찌되었던 쪽잠을 즐기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평화롭다.

     

     

     

    소란스런 소리에 가까이로 다가서니 대나무 숲 사이로 베드민턴장이 있는데,

    그 곳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부지런한 님들이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보기 좋은 풍경을 잠시 쳐다보고 지나친다.

     

     

     

    이건 또 무엇인가?

     

    얼핏 보면 당간지주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대문의 형상이다.

     

     

     

    그 곳으로 들어서니 또 낮선 형상의 무엇인가가 마당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월성우물'이란다.

     

     

     

     

    궁금하여 우물 속을 들여다 보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그리 깊지 않는 우물이다.

    그런데 보존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안내판 하나와 부실한 진입로 그리고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가로질러 논 돌기둥 둘이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또 숲길을 걷는다.

     

     

     

     

    소소한 풍경들을 즐기며 월성의 가장자리를 돌다보면 가끔 열리는 조망이 정겨운 풍경들이다.

    이곳 경주는 문화의 도시인지라 아직은 시골풍경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리라.

     

     

      

     

    월성의 자연 방어벽이 되었다는 남천도 내려다 보이고

    그 가장자리에는 한 마리의 백로가 한가로이 낚시 중이다.

     

     

     

    그리고 복원공사가 한창인 월정교 복원공사 현장도 내려다 보인다.

    아마도 복원이 완공되면 경주에 또 하나의 손꼽히는 명물이 생기게 될 것이다.

     

     

     

     

    월정교 복원현장 뒤로 교동마을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교동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사방 십리에 굶어 죽는 사람을 없게하라 했다는 최부자로 익히 알려진

    경주 최씨의 고택과  향교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서니

    운동을 나오신 산책길의 마을 어르신들만 간간이 지나치고 모기들만 극성이다.

     

     

     

    처음 진입했던 반월성 입구와 석빙고가 저 멀리로 보이고...

     

     

     

    좌측으로 부용화가 계림으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한다.

    관광객들이 붐빌 길이지만 아침시간이라 한적한 길이 되었다.

     

     

     

     

     

    석빙고를 지척에 둔 정자가 다시 숲속으로 보이는데

     

     

     

    어! 이번엔 할아버지 혼자가 아닌 할머니와 짝을 이뤘다.ㅎㅎ

     

    여친일까?

    아니면 부인일까?

     

     

     

    어찌되었던 아름다운 모습이다.

     

    간혹 느끼는 바지만, 젊은 연인들의 풋풋한 아름다움 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

    아니면 다정히 벤치에 앉은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정상적인 길은 아니지만 첨성대를 조금 지난 지점에 쪽길이 하나 있다.

    궁금하니 어쩔수 없이 그 길로 내려서기로 한다.

     

     

     

    월성의 방어진 해자를 복원하기 위한 돌들인 듯 하다.

    각양각색의 저 많은 돌들을 어디에서 다 찾았을까?

     

    하기야 경주 인근에는 땅만 파면 문화재란 말이 있다.

    그 이유로 건설공사를 기피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유물이 발견되면 그 발굴비용까지 건축주가 물어야 된다니...

     

     

     

     

    안내판의 도움으로 월성해자에 대해 잠시 공부를 하게 된다.

     

     

     

     

    첨성대 방면에서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오던 노부부

    오늘은 아름다운 풍경에 아름다운 주인공들을 자주 접한다.

     

    "여기 앉아 담배나 하나 피웠다 가요." 할머니의 배려어린 말씀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오늘도 한 시간여 산책을 즐기고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과 월성해자의 복원현장을 끝으로

    본 성인 월성을 빠져나와 동궁의 마굿간에 묶어둔 애마를 찾아 집을 향한다.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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