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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아침 분황사의 풍경국내여행/경주시 산책길 2012. 9. 16. 00:30
◎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아침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홀로 여가시간을 이용해 나가는
산책길이라 물론 상관은 없다.
오늘은 분황사모전석탑을 만나기 위해
분황사로 핸들을 돌려 본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은 한가한데
입구부터 고찰의 포스가 느껴진다.
분황사 앞에서 잠시 안내문을 들여다 보고 경내로 들어서기로 한다.
분황사(芬皇寺)
분황사는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3번지에 소재하는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이래
지금까지 법등(法燈)을 이어온 유서 깊은 사찰이며,
분황사 창건 직후에는 당대의 명승 자장율사(590~658년)와 원효대사(617~686년) 주석(駐錫)하였다.
분황사에는 솔거가 그렸던 관음보살상 벽화와 경덕왕 14년(755년)에 강고내말이 구리 306,700근으로
주성하였던 약사여래상 등이 있어 사격(寺格)을 높였다.
분황사는 당간과 지주 중문 석탑 3금당 강당 회랑을 갖춘 대가람이었으나,
고려시대 고종 25년(1238년) 몽고침입과 조선왕조시대의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을 차례로 겪으면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버리고 광해군 원년(1609년)에 중창하고
새로 주조한 보광전과 약사여래입상 등이 사역(寺域)을 지키고 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모전석탑과
원효대사의 비석을 세웠던 화쟁국사비부 그리고 구황동 당간지주와
신라 호국룡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석저(石井) 등의 석조문화재가 남아있다.
대부분의 사찰이 그렇듯 분황사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는 탑 그것이 분황사모전석탑이다.
여느 사찰의 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기단과 탑이 벽돌 모양의 돌로 쌓은 것과 사방에 석문과
그 안으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 또한 안내문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인 이 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다.
기단의 규모나 탑의 형태로 보아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15년에 일본인이 허물어진 것을 해체 수리하였다.
1층 몸체 돌의 사방에는 쌍여닫이 돌문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고,
감실 양쪽으로 불법(佛法)을 지키는 인왕상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는 네 마리의 석사자를 배치하였다.
탑에서 나온 돌 사리함에는 여러 가지 구슬, 가위, 금은 바늘과 은함, 숭령 통보,
상평 오수 등이 들어있어, 고려 숙종, 예종 연간에 해체 수리되었을 것을 알 수 있다.
네 모퉁이를 석사자가 지키고 있다고 했는데, 쌍쌍의 그 모양이 다르다.
이 모습은 물개 아니면 바다사자의 형상인 듯 하지만
아마도 암사자와 수사자의 구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생각이 맞다면 갈퀴가 없는 이 사자는 암사자 일 것이다.
분황사의 경내에는 아직도 발굴 중인 문화재가 많은 듯 곳곳이 발굴작업 중인 흔적이다.
이곳은 금당지 발굴 작업장인 듯하다.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쉽게 볼 수 있음)
창건 이후 3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니
법당의 배치와 모양이 달랐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보광전은 조선 광해군 원년(1609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
대한민국의 여성상, 아니 어머니상....
많은 비는 아니지만
우중에 그것도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망을 비는 모습이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소망...
지아비를 위한 아내의 소망...
부모를 위한 자식의 소망...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모두가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망일 것이다.배롱나무 가지 아래로 들여다 보이는 절집
그 모습이 아름다워 다시 담아 본다.
빗물을 머금은 배롱나무
백일을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이라 했던가
그 아름다운 자태도 이젠 가을의 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우연히 앵글로 내려다보게 된 바닥에는
어느덧 가을이 깊어 가는 듯
낙엽은 힘 없이 그 바닥에 떨어져 나 뒹군다.
긴 세월의 역경을 다 거친 듯 한 불상은 앞뜰 한편에 자리하고
그 앞으로 석등의 형상을 한 사리탑이 그 불상을 호위하고 있다.
대원심 보살 사리탑(大願心 菩薩 舍利塔)이다.
그렇다면 저 뒤에 모셔둔 상이 대원심보살상일까?
분황사의 안내문에 의하면 대원심보살은 불기 2040년(1860 넌)에 태어나 불기 2479년(1935년)에 열반하셨으며,
어려서부터 불도에 지극정성으로 정진하였는데
불기 2477년(1933년) 살아계실 때 치아에서 부처님 모양의 백옥의 사리가 나와
온 세상이 경탄하여 그 불도 정성을 기리고자 이 사리탑에 봉안 분황사에 모셨다 한다.
발길을 잠시 돌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분황사 화쟁국사비부(和諍國師碑趺)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원효대사비의 받침돌이다.
비석은 고려 숙종 6년(1101년) 8월에 내린 조서에 의해 분황사에 건립되었다.
숙종은 원효가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유사로 하여금 비를 세우게 하였다 한다.
이번에 보광전 앞뜰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의 한켠에 호국룡변어정으로 불리는 신라시대의 우물 분황사 석정(石井)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을 깎고 파서 우물을 낸 것일까? 아니면 우물을 파고 거기를 깎아서 덮은 것일까?
들여다봐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데....
분황사 모전석탑을 가운데에 두고 탑돌이를 하듯 주변을 돌며 살펴본다.
그렇게 둘러보다 이제야 보광전에 관심을 가져 본다.
1609년인 조선 광해군 때부터 보존되어온 금당지 보광전이다.
그 수백 년의 긴 세월을 보광전의 빛바랜 단청과 벽면의 탱화들이 대변하고 있다.
보광전에는 분황사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 안내문의 말을 빌어 본다.
이 불상이 왼손에 들고 있는 건칠제 약그릇의 뚜껑 안쪽에 "건륭삼십구년을미사월이십오일조성야(乾隆三十九年乙未四月二十五日造成也)"라는"건륭삼십구년을미사 월 이십오 일 조성야(乾隆三十九年乙未四月二十五日造成也)"라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어 조선 영조 50년에(1774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의 얼굴은 둥글고 낮은 상투 모양이 표현된 머리에는 석회를 뭉쳐 만든 나선형 머리카락을 부착하였으며, 옷은 양 어깨에 걸쳐 두껍게 처리하여 장대한 신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의 사이에는 화형으로 접고 띠를 두른 군의가 U자 모양으로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무릎 밑에 이르러 3단으로 접혀 있다.
대좌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판석으로 대신하고, 불상 앞에 놓인 석제 불단은 사천왕상이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탑신석을 받침으로 삼고 있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렇게 분황사 경내를 두루 살펴본 후 듬직하게 석사자가 보호 중인 분황사 모전석탑을 다시 올려다 보고...
천년을 지나고 또 수백 년을 보낸 긴 세월을 이어온 분황사를 다시 생각게 하는 고목에 낀 이끼들..
분황사의 대종각을 마지막으로 탑돌이(ㅎ~)를 마치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분황사 앞 황룡사지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당간지주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당간지주는 분황사 주차장 바로 앞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눈앞으로 펼쳐진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에 발길이 이끌린다.
누렇게 변하는 가을의 들판
그리고 건너편으론 운무를 두른 남산이
한 편의 수묵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새 발길은 노란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황룡사지까지 옮겨져 버리고 한동안 차분한 풍경을 즐긴다.
그 아름답고 차분한 풍경을 더해주는 장면....
홀로 문화재 탐방을 나온 듯 한 젊은 아가씨다.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이의 부지런함.
이른 아침에 홀로 카메라를 들고 나선 것이다.
분황사에서부터 줄곳 뒤를 따르듯 진행방향이 같더니
결국 앵글에 갇히게 된 것이다.ㅎㅎ~
선도산도 눈앞으로 조망된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의 풍경에 빠졌다가
다시 당간지주가 있는 분황사 입구로 돌아온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다.
많이 보아온 당간지주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간지주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가 바로 그것이다.
당간지주는 옛날 절에서 "당"이란 깃발을 걸었는데
그 깃발을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기둥이 당간지주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360cm의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와 황룡사지가 접한 곳에 위치해 어느 절의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분황사의 당간지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당간지주가 모델이 된 풍경을 마지막으로
빗줄기도 점차 줄어들고
비 내리는 아침 분황사의 산책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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