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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과 백률사
    국내여행/경주시 산책길 2012. 11. 14. 07:04

    7번 국도변에서 소금강산을 오르기 전

    만날수 있는 보물과 문화재

     

    그것이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과

    정상부에 자리한 아담한 산사인 백률사이다.

     

    산책로 수준의 소금강산과

    그 곳에 자리한

    백률사를 모르는 경주시민은 드물것이다.

     

    석조사면불상 또한 많은 신도들이

    기도를 위해 찾는 곳이다.

     

     

     

    7번 국도변 주차장에서 몇걸음 옮기지 않아 만날수 있는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의 모습이다.

     

    작은 석교를 건너 들어서게 되면

    두손 모아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는

    중년 또는 노년의 여성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물론 남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입구 안내문을 보면 설명이 잘 되어 있듯이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은

    보물 제 121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에 위치한 소금강산(小金剛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四方佛)의 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면에는 삼존입상이 그리고 북쪽면에는 보살상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에는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金鼓)에는

     굴석사(堀石寺)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서쪽과 남쪽면의 모습

     

    양쪽 입석불을 제외하면

    남산 칠불암의 사면불과 닮은꼴이다.

     

     

     

    남쪽과 동쪽 면의 모습

     

     

     

    그리고 북쪽 면의 모습이다.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이라는 좌측 보살상은

    그 모습이 흐릿하여 자세하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위의 설명과 같은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특이하게도 각 면마다 제각각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울수 있는 곳이 만들어 져 있다. 

     

    사면이 다 보살상이 모셔져 있어 그런것인 듯 하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을 지나면 위로 포장도로와

    돌계단이 이어진다.

     

    둘다 백률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어느곳을 따라도 되지만

    왠지 돌계단이 더 마음에 끌려 그 길을 따른다.

     

     

     

    약간 가파르긴 하지만 소금강산이 불과 100m 조금 넘는 산인지라

    그리 힘들지 않게 백률사를 만날 수 있다.

     

     

     

    대웅전과 그 앞의 범종각

    그리고 대웅전 뒤에 자리한 산신각이 전부인 아담한 산사의 풍경이다.

     

    물론 절집이 범종각 뒤로 자리하고 있긴 하다.

     

     

     

    백률사에 대한 안내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백률사(柏栗寺)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년)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殉敎)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 백률사 대웅전(柏栗寺 大雄殿)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는데,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뒷뜰 화단에서 장미와 열애중인 베짱이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

     

     

     

    삼성각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웅전 뒤편의 삼성각은

    여느 사찰과 다를바 없이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삼성각 안은 작은 등불들만 불을 밝히고 있고 

    큰 복전함이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인적 없는 고적한 산사를

    그렇게 돌아보고

     

    이어질 산행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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