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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의 국보를 품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천년고찰 화엄사국내여행/전라·충청도 여행 2012. 11. 21. 07:05
여느때와 같이 하산길에 사찰의 경내로 들어선다.
오늘은 지리산 자락의 화엄사다.
2점의 국보에 수 점의 보물들을 안고 있는 사찰이다.
화엄사(華嚴寺)는 6세기 중엽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에는 선종대본선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격기도 하였기에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우리는 산행후 측면으로 들어섰지만
일반적으로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네루 앞마당에 들어서게 되는데,
아래로는 승방과 강당 등의 수행공간이
그리고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으로
그 조화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한다.
산행후 측면으로 들어서니 때마침 정막을 깨는 수차례의 종소리가 울린다.
땡~ 땡~ 땡~
젊은 스님이 저녁공양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고 자리를 비운다.
경내로 들어서는 길은 수행공간인 듯 조용하기만 하고
신작로의 느낌을 주는 넓은 마당을 통과하게 된다.
그 길을 통과하고나면
이내 그 웅장함에 입을 벌리게 된다.
모과나무에는 과실이 주렁주렁 메달렸고
그 위로 범종각이 젤먼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찰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저 계단을 따르면
대웅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있는 곳으로 오르게 된다.
가을풍경과 잘 어우러진 고건축물들...
옛 모습들을 잘 간직한 모습이다.
밝고 화려한 단청이 없는 건축물들이 대부분이다.
예불공간인 대웅전의 앞마당...
넓직한 그 곳에는 쌍둥이 같은 오층석탑이
호위를 하듯 동쪽과 서쪽으로 위엄을 과시하며 버티고 섰다.
이 석탑들은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과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으로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동오층석탑은 보물 제 132호로
통일신라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에 만들어진 높이 619cm의 탑이다.
이 탑의 표면에는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고 기단도 단층으로만 이루어졌으며,
1999년에 사리 장엄구를 비롯한 유물이 탑 속에서 발견 되었다 한다.
서오층석탑 또한 보물 제 133호로 지정되었으며
동오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높이 640cm의 탑이다.
이 탑은 12지신과 여덟 무리의 신들,
사천왕이 함께 새겨진 드문 예로서 1995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이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그 모습을 자세히 담아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늦은 오후시간이라 모두가 빠져나가고
이 넓은 앞마당에 단둘이 남았다.
고적한 분위기에 잠시 빠져보고
짧은 시간이라 바삐 경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아주 큰 석등을 발견하여
대웅전은 뒤로 하고 각황전을 향한다.
그 명칭은 각황전 앞 석등(覺皇殿前 石燈)인데,
역시 예사롭지 않았던 모습에 걸맞는 국보 제 12호로 등재 된 것이다.
이 석등은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간주석(竿柱石)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이다.
해는 저물어 가고
각황전과 대웅전의 앞마당도 그늘이 드리워 진다.
각황전 앞 마당의 모습과 뒷 담벼락의 모습도 살펴보고
법당 안 쪽으로 모셔진 인자한 부처님의 표정도 느껴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국보를 만나기 위해
각황전의 뒷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산행후의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오른 언덕위에 자리잡은
사사자삼층석탑...
국보 제 35호로 등재 된 석탑이다.
사사자삼층석탑을 잠시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 오랜 고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아 들여다 보지만
출입금지란다.
예사로운 일반 민가는 아니었던 듯 한데
인적이 없는 조용한 폐가의 모습이다.
물어볼 곳도 없고 안내문 조차 없어
바쁜 시간이기에 다시 돌아 선다.
그리고 국보 제 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을 다시 살펴본다.
사사자사리석탑으로도 불리는 이 석탑은
기단이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의 둘레는 12구의 천인상(天人像)의 조각으로 둘렀으며
상기단의 네 귀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기둥모양으로
탑을 머리로 떠 받친 형상이다.
그리고 사사자삼층석탑 앞을 지키고 있는 석등 또한 특이한 모습이다.
부처님의 모습일까?
스님의 모습일까?
효심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무릎을 꿇은 채 비구니승인 어머니께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 한다.
늦은 시간이라 그 곳에서 내려서기도 빠쁘다.
그렇게 내려서서
대웅전 앞을 지나고...
그나마 대웅전과 각황전에는 단청이
곱게 남아있다.
수행공간 중 하나인듯 한 건물의 대청 위로는
보내기 아쉬워서 일까?
그 가을을 말리기에 한창이다.
천왕문을 지나고
일주문을 향하는데
또 예사롭지 않은 무엇인가가 발길을 잡는다.
조선시대(1663년)에
높이 355.5cm로 세워진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都大禪師碑)다.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각성의 탑비란다.
벽암각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성하는 등,
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을 하였으며.
전란 후에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해인사, 법주사 등의
여러 사찰의 중수를 주도하여
조선후기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한다.
그렇게 두루두루 다 살피고 나온 듯 하지만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돌아 본 터라
수박겉 핥기 식으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잠시의 짬으로 둘러보기에는 너무나 웅장하고
살펴볼 곳도 많은 사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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